무고한 존재 : 인간의 증명
무고한 존재는 살인고백이라는 충격적인 도입부로 시작한다.
이 툴리오라는 남자는 선민 의식이 강하며, 아내를 사랑한다면서 아내를 후려치고 불륜을 저지르는 매우 파렴치한 인물이다.
“왜 남자는 그가 쾌락을 얻어대는 존재에게 피홰를 가한다는 사실을 의식할 때 훨씬 더 강한 쾌락을 느끼는걸까. 왜 그런 무서운 능력을 본성에 갖고 있는걸까.” - 툴리오
아내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그의 불륜은 대담해졌고, 급기야 아내를 가장 사랑하는 동생으로 여겨기겠다고 선포한다. 아내를 동생의 자리로 강등하고 그 자리에 정부를 앉히려는 툴리오. 그러던 그는 줄리아나의 병을 계기로 다시 한번 잘해보려하지만, 정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다시 한번 배신을 한다. 그렇게 뜨거웠던 정부와의 관계도 식고 집에 온 툴리오. 그는 아내의 달라진 모습과 필리포의 헌정을 본 뒤 아내의 정절을 남몰래 의심한다.
관계 회복을 위해 둘만의 추억이 어린 시골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은 줄리아나의 갑작스런 병증으로 돌아오고, 어머니의 얘기에 큰 충격을 받는다.
“줄리아나가 임신했단다”
불륜의 씨앗이란걸 알기에 툴리오는 혼자 속을 끓이고,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 사람들은 축하하기 바쁘다. 아이가 죽길 바라는 그의 원과는 달리 아주 건강하게 태어나고, 아기가 자신과 자신의 딸들을 밀어낼거란 사실을 깨달은 그는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는걸로 끝난다.
소설 속에서 툴리오는 아기의 존재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린다. 세상에서 가장 원치않는 아기였고 소설 내내 아기가 죽기만을 기도했다. 아기가 태어난뒤 바깥은 아버지가 된 툴리오를 축하하고 아기를 찬양하지만, 툴리오는 안에서 온갖 분노와 환멸, 저주를 퍼붓는다.
툴리오는 이기적이고 지극히 뻔ᄈᅠᆫ한 인물이다. 반면에 그는 현실적인 인간이기도 하다.
제3자들은 비난하지만 툴리오같은 일이 본인에게도 일어난다면 쿨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과감하게 쳐낸 툴리오를 보며 난 안나 카레니나의 카레닌을 떠올렸다. 비슷하지만 둘은 다른 캐릭터다.
아내를 용서했지만, 툴리오는 온전히 그녀를 용서하지 못했고 카레닌은 아내의 사생아까지 받아들여 사랑으로 키운다.
둘의 위치가 다른 탓도 있지만, 툴리오의 성격상 아기가 딸이었어도 방치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결론적으로 카레닌이 툴리오보다 훨씬 성숙한 인물인 셈이다.
줄리아나는 소설 속에서 툴리오에 대한 사랑을 절절하게 표현하지만 말과는 달리 사랑은 이미 식었을 것이다. 툴리오의 연속된 배신으로 사랑은 식어갔고 최후의 배신은 그녀를 완전히 돌아서게 했을것같다. 그녀의 마음은 오래전 이미 돌아섰고, 자살 시도도 진심이 아니었을것이다.
소설에서 줄리아나는 이후 어떤 선택을 했는지 나와있지 않다. 아무리 미움받는 아이라해도 자신의 뱃속으로 낳은 아기다. 자길 사랑한다는 남편이 죄없는 아기를 사랑했는데 줄리아나가 그걸 가만히 받아들이고 넘어갈 리가 없다. 그렇게 사랑이 없는 엄마였다면 필리포를 만날 이유도 없겠지.
이후 헤르밀 부부는 그저 법률적 부부일뿐 아무것도 남지 않은 형식적인 부부로 살아갔을듯하다.
툴리오가 배신을 하지 않았다면, 줄리아나가 외도를 하지 않았다면, 임신을 하지 않았다면, 툴리오가 아내를 용서했다면 등등 이 두사람의 불행에 대해 수많은 if가 따라붙는다.
이미 깨어진 조각을 하나씩 다시 붙이는건 매우 어렵다. 처음부터 조각이 깨지지 않도록 신경써야하는데 인간이란 존재는 늘 겪고나서야 깨달음을 얻고 그 후에도 그 깨달음을 외면한채 살아간다. 헤르밀 부부도 다른 이들처럼 그렇게 쭉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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