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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3) 파리 시기

페르티예 2020. 6. 24. 22:03

빈센트가 미술을 시작할 무렵, 테오가 지원의 의무를 아버지로부터 넘겨받았다. 

 

테오는 다달이 60프랑 정도를 송금했는데, 빈센트는 50프랑은 집세로 나머지는 작업 비용으로 사용했다.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집에 돈이 묶여서 힘들었단걸 보면 빈센트도 한국식 하우스 푸어였던 셈이다.

 

60프랑을 받던 빈센트는 100프랑을, 나중엔 150프랑을 요구했는데 이 돈은 당시 테오가 받던 월급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테오의 수입은 괜찮은 편이었지만 빈센트 부양 외에 가족들, 개인적인 씀씀이까지 겹치니 테오도 경제적으로 힘들게 보낸건 별반 다르지 않다. 

 

초반엔 거절하다 결국 원대로 보내주면서 테오는 늘 좀더 저렴한 재료를 쓸 순 없느냐, 모델을 덜 쓸순 없는가. 일자리오 병행해볼 생각은 없는지 묻곤 했다. 빈센트의 답은 언제나 거절이었고, 심지어 일자리는 생각만으로도 '악몽'이라며 거절했다. 

 

"형제의 의무란 심란하게 만들거나 낙심케 하는 것이 아니라 위로이다." 

- 빈센트 반 고흐

 

편지로 싸울때도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테오는 형을 무척 사랑했고, 형과의 연이 끊기는 걸 두려워하여 언제나 져주곤 했다. 살아 생전엔 테오에게, 사후엔 테오의 아내와 조카에게 이중으로 빚을 졌다고 할 수 있다. 

 

오랜 고된 생활고 실패에 지친 빈센트는 동생이 있는 파리로 갔다. 테오는 오래전부터 빈센트에게 파리로 올것을 권유했지만 갑작스런 형의 등장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편지로도 힘든 형과 같이 살아야한다니! 

 

빈센트가 숙부와 함께 떠난 10여년 전 이후로 형제는 같이 지낸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빈센트는 매우 까다롭고 지저분한 룸메이트이며 테오와 라이프 스타일이 정반대인 사람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시작한 동거 생활은 테오의 건강까지 악화시켰다. 

 

그렇게 힘들게 시작된 둘의 동거 생활은 테오가 사랑에 실패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테오는 친구의 여동생인 요한나에게 푹 빠져있었다. 실제로 만난건 고작 3번 남짓이었지만 요한나에게 깊이 매료되었다. 이 여자다 싶었던 테오는 청혼을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향했고, 텅빈 동생의 자리를 보며 빈센트는 <해바라기>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테오의 섣부른 청혼은 바로 거절당했고, 낙심한 동생을 위로하면서 두사람은 어렸을때처럼 가까워졌다. 

 

형으로부터 진심어린 위로를 받은 테오는 빈센트를 자신의 일상에 조금씩 끼워주었다. 

 

테오와 빈센트가 다시 형제애를 쌓아가던 시기, 철옹성같던 구필도 격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구필의 창업 1세대들이 모두 은퇴하고 2세대 경영진을 맞이했으며 새로운 예술적 흐름을 적극 수용하면서 테오의 역할이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빈센트는 항상 테오와의 협업을 꿈꿔왔다. 항상 불가능한 꿈이었으나 그게 현실에 가까워진 것은 파리 체류 시절이다. 그는 테오의 일에 실용적인 조언을 많이 했고 새로운 미술적 변화를 연결시켜주었다.

 

동생의 일에 도움을 주고, 빈센트도 그 나름대로의 예술적 변화를 맞이했다. 항상 일관되게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던 그는 잡지사 삽화가를 꿈꾸며 이곳저곳을 뛰어다니고 꽃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식충이 소리만 들으며 구박받던 빈센트가 그 나름의 밥값을 하려던 이 시기.. 갑자기 빈센트가 파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