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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4) : 아를 시기

페르티예 2020. 6. 25. 07:14

 

 

빈센트가 갑작스레 파리를 떠난건 테오를 위해서였다. 

 

함께 방탕한 생활을 즐기면서 둘의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 의사가 안정을 취할 것을 간곡하게 부탁했지만, 둘은 귓등에도 듣지 않았으니 나빠지는건 당연한 일. 

 

빈센트 본인이 보기에도 테오가 눈에 띄게 수척해지자 자신이 옆에 있을수록 동생에게 좋을게 없단 생각이 들었다. 작게 시작한 망상은 급기야 자신때문에 테오가 죽을 수 있단 사고로 발전했고 동생을 위해 파리를 떠났다. 이것이 형제의 마지막이었다. 

 

파리를 떠나 새로운 정착지로 가게 된 곳이 그 유명한 아를로, 그곳에서의 삶은 빈센트가 지겹도록 겪은 일상이었다. 

 

이웃과 불화하고 애들한테 놀림당하고 가는 곳마다 방해 공작이 잇따랐다. 늘 그렇듯 힘들게 지내던 빈센트는 노란 집을 발견했다.

 

바로 이거다

 

그 집을 본 순간 빈센트의 오랜 소망이 수면 위로 치솟았다. 오래 전부터 빈센트는 화가들의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했다. 모든 권리를 갖고 집단으로 자유롭게 창작한다면 이상향을 만들 수 있다 생각했다. 또한 이 공동체는 빈센트의 영원한 소망 가정을 만들게 해주리라.

 

노란 집을 보자마자 빈센트는 테오에게 전하지도 않고 바로 계약했다. 빈센트의 눈엔 꿈처럼 보이는 집이었지만 실제론 가스도 안들어오고 시설이 굉장히 열악한 공간이었다. 이곳을 작업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건 늘 그렇듯 테오의 몫.

 

꿈의 공간이 완성되는동안 빈센트는 같이 작업할 동료찾기에 골몰했다. 처음부터 고갱을 데려오러한건 아니다. 고갱은 후순위였으나 앞순위 후보들의 결격 사유로 고갱까지 차례가 왔다.

 

빈센트는 테오에게서 150프랑씩 지원받았다. 150프랑은 당시 교사 급여의 2배로 평범하게 산다면 중산층의 삶을 살 정도는 되는 큰 돈이었으 늘 돈가뭄에 시달렸고 그럴때마다 동생에게 비굴할 정도로 굽신대며 도움을 줄 것을 요청했다.

 

빈센트는 어떤 곳에 그렇게 돈을 썼을까. 그는 먹고 자는 데 돈을 거의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델료와 작업 비용은 아끼지 않았다. 특히 아끼지 않은게 모델인데, 안타깝게도 전문 모델료는 너무나 비쌌기에 1회에 2,3프랑만 주면 되는 일반인들을 모델로 선호했다. 그리고 이런 모델을 하루에 몇 명씩이나 쓰니 돈이 모자라며, 전문 모델을 쓴것보다 결과물이 낮은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빈센트가 꿈에 부풀어 있는동안, 고갱은 올듯말듯하며 자신의 실익을 챙기고 있었다. 이런 고갱을 모르는지 빈센트는 난생 처음으로 구필을 그만두겠다는 테오를 말렸다.

 

금방 오겠단 고갱의 협상은 길어졌고, 화가 난 고흐 형제가 파탄내려던 순간 센트 숙부가 사망하면서 테오에게 재산을 남겨주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유산 상속으로 금전적으로 여유로워진 테오는 빈센트와 동일한 조건을 약속했고, 그에 만족한 고갱은 그때야 아를로 가겠단 확답을 내놓았다.

 

아를의 빈센트의 작업 속도는 대단히 빨라졌고, 고갱의 방을 장식할 목적으로 노란색 배경의 해바라기 연작을 그렸다. 배경이 된 노란색은 고갱에 대한 환영의 의미로서 빈센트가 고갱과의 협업을 얼마나 고대해왔는지를 보여준다. 다른 지역과 별반 다를게 없던 아를은 고갱이 온다는 얘기에 빈센트에겐 정이 넘치는 창작의 공간으로 변신했다. 

 

이 시기 빈센트가 고갱의 호의를 얻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은 눈물 겨울 정도다. 

 

기다리던 자화상이 도착했을때 빈센트는 작품을 보고 색이 너무 어둡다며 고갱을 비판하는 편지를 테오에게 보냈다. 고갱과 담판 지은 후 든 테오의 불안감이 서서히 맞아가고 있었다..

 

애초에 저 둘은 극과 극으로서 아를로 오기 전부터 이 둘의 파탄은 이미 예정된 것과 다른게 없었다.

 

기본적으로 고갱은 신뢰할만한 사람이 못됐다. 허언증은 애교고 자신을 믿고 따라온 제자마저 이역만리 외국에 버리고 올 정도로 냉혹함 인물이었다. 불과 불이 만났으니 이게 어찌 안터지고 그냥 지나가겠는가. 

 

동거 초반부터 예술적 논쟁과 싸움이 끊이질 않았다. 10월에 아를에 온 고갱은 한달도 못되어 파리에 돌아가겠단 편지를 쓸 정도였다. 

 

둘 다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었지만 먼저 불을 붙이는건 빈센트였다. 

 

그 옛날 주변 사람들이 그를 다 피하게 만든 '자신의 사상 강요하기'가 고갱에게 적용되었으니 고갱이 뭔 수로 버티겠는가. 아침부터 시작된 말다툼은 잠자리에 든 밤에 벽을 사이에 두고 이어지는 지경에 갔다. 그리고 그해 성탄절 즈음.. 둘은 아침부터 당시 최대의 이슈인 잭 더 리퍼 사건으로 논쟁했다. 한참동안 말다툼이 이어지다 집 밖을 뛰쳐나온 고갱을 빈센트가 쫓아왔다. 

"떠날건가?"

"가겠네"

빈센트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기사 쪼가리를 손에 주고 사라졌다. 빈센트가 준 기사는 잭 더 리퍼의 살인이 적힌 기사였다. 엄청난 공포를 느낀 고갱은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빈센트는 술을 마시다 자신의 귀를 자르고 그 귀를 들고 고갱이 단골이던 라셸을 찾아가 귀를 건넸다. 그후 빈센트는는 경찰과 테오에 의해 정신병원에 끌려갔다. 

 

고갱이 아니라 빈센트를 이해하는 타입의 동료가 왔다면 아를의 비극이 없었을까? 고갱이 좀 더 욕먹는 감이 있으나 개인적으론 빈센트의 잘못이 좀 더 크다고 본다. 순수한 영혼이었다곤 하지만 빈센트는 기본적인 배려가 항상 모자랐다. 때론 자신의 주관을 굽힐 줄 알아야하는데 그는 굽히는 일이 전혀 없었다. 처음부터 자신의 사고를 강요하는데, 어떤 사람이 빈센트를 버텨내겠는가. 그걸 잘 견뎌낸 테오가 대단한 인물인게 바로 이 때문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빈센트는 서서히 회복되어갔다. 모두의 예상을 깬채 요양원 생활을 연장한건 테오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바깥세상에선 항상 천대를 받았는데 요양원에선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았다. 이때문에 빈센트는 요양원에 남아 치료와 작업에 전념하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 빈센트에게 조카가 생긴단 기쁜 소식이 들어왔다. 자신의 이름을 따 빈센트 주니어가 될 거란 조카 생각에 빈센트는 무척 행복해했지만 동시에 자신처럼 되지 않을까란 공포감에 시달렸다. 행복-절망 회로를 오가는동안 그의 몸은 급격하게 쇠약해졌고 발작의 빈도수가 급격하게 높아졌다.

 

이제 빈센트 스스로도 자신의 생명은 1년도 안남았구나.. 여길 정도가 되었다.

 

고통으로 들어간 요양원 생활은 빈센트 화가 인생의 마지막 창작욕을 태우는 곳이 되었다. 계속 들려오는 테오의 건강 소식과 잃어가는 자신감에 반비례하는듯 빈센트의 작품들은 갈수록 아름다움으로 빛나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