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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

 

 

단눈치오는 어려서부터 쇼맨십이 투철했다. 그는 16살에 ‘16살 천재시인, 낙마로 사망이라는 오보로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아주 어린 나이였음에도 대중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그에 걸맞는 작품을 쓰고 싶어했다.

그는 여가를 누리며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우월한 부류와 한편 생계를 위해 일해야하는 부류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첫 번째 계급에 속한단 사실을 한번도 의심해본적 없지만 원통하게도 환경이 자신을 두 번째 계급으로 밀어넣었다고 생각했다.’

이탈리아 전체적으로 보면 상위 계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세계에선 신참자였고 빈틈을 메꿔줄 후원자도 없었다. 그래서 온갖 유력 인사들과 친분을 맺으려 애를 썼고 그들같이 살기위해 노력했다.

고향을 떠나 로마에 정착한 7년간, 신문사 가십 기자로 일했다. 그는 기자 생활동안 귀족 사회를 자주 엿볼 수 있었고, 그런 경험을 토대로 처녀작인 <쾌락>을 발표했다.

상류사회 진입을 위해 발버둥치던 시절, 벼락 출세 귀족의 딸과 눈이 맞아 사랑의 도피를 했지만 그에게 돌아온건 상류사회 진입이 아닌 이혼한 장모와 버림받은 아내, 그리고 애들이란 혹이었다.

늘 그렇듯 아내를 배신하고 친구와 요트 여행을 갔던 시절, 뜻밖의 풍랑으로 목숨을 잃을 뻔 했지만 해군 전함에 의해 구조되는 일이 있었다. 이떄를 계기로 군대에 관심을 갖게 된 단눈치오는 엄청나게 강경한 군국주의 옹호자로 변신하였다.

작가로서의 성공과 반비례하는 그의 여성 편력은 유럽 최고의 여배우였던 엘레오노라 두세를 만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작가로서의 전성기는 두세를 만나면서 화려하게 꽃피웠고, 그의 희곡은 언제나 두세가 주연하며 큰 성공이 잇따랐다. 그가 성공적인 작가 생활을 한데에 두세의 공이 큼에도 단눈치오는 정작 본인의 소설에선 두세를 모델로 노화에 저항하는 부정적인 면을 묘사했다.

쓰는 작품마다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어 큰 돈을 벌었지만 그의 씀씀이는 그의 아버지가 연상될 정도로 매우 컸고, 급기야 빚 때문에 갖고 있는 물건마다 경매를 당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와중에 짧은 정치인 생활도 경험했는데, 의정활동은 매우 부실했지만 파시즘의 이론적 근거를 만들어냈다. 그의 이런 면은 베네치아 종탑이 무너졌을 당시의 소회를 보면 알 수 있다.

헤아릴룰 수 없는 많은 희생자로도 무너진 종탑을 보상하기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나의 목적을 위해선 그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한다는 논리는 결과적으로 수천만의 목숨이 사라진 세계 2차 대전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일개 개인의 모토가 역사의 거대한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건 신중함이란 인생의 교훈을 일깨워준다.

단눈치오의 이런 사고는 이탈리아가 전쟁에 휘말릴수록 점점 더 넓어져갔다.

연합국으로 수십만의 피를 흘렸음에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피해의식은 커졌고 결국 세계 여론을 무시해가며 피우메를 점령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때가 인간 단눈치오가 가장 빛났던 순간이자 내리막의 시작이었다. 그는 선동을 통한 이슈화엔 매우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가장 중요한 행정 실무 능력과 실천력이 전무했다. 수많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그는 자신이 직접 쿠데타에 뛰어들길 꺼려했고,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답답함을 느낀 지지자들은 다른 대안을 찾아 떠나갔다. 

이게 무솔리니와의 가장 큰 차이였고, 이 틈을 정확히 비집고 들어오면서 말년엔 무솔리니에게 개인적 청탁을 하며 살아가는 처지로 바뀌었다. 

불과 3,4년전만 해도 무솔리니는 단눈치오 안중에도 없던 이름이었고, 파시즘 세력 내에서의 지분도 작았으나 단눈치오의 헛점이 유지되는동안 빠르게 세력을 키워나가 마침내 대권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피우메에서 귀국한 후 그는 정치 현장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가끔 무솔리니 체제에 대한 찬양성 코멘트 몇마디 이후엔 모든 정치적 사안에 대한 입장 표명을 거부했다. 죽기 전 자신이 낳은 파시즘에 대해 진하게 후회했다곤 하지만 역사는 파시즘으로 인한 비극에서 완전 무고한 존재로 기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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